과거에는 일하는 곳에 따라 개인의 업무가 결정되던 때가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업무에 따라 회사를 선택하는 경우도 늘었다. 한마디로 직장을 선택할지, 직업을 선택할지 고민해야 할 시기다. 우리는 이런 과도기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지금 중학교 또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10대 청소년들은 몇 살까지 살까요? 현재와 같은 추이라면 평균수명이 120세에 달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앞으로도 100년은 더 살 만큼 엄청나게 장수하는 시대를 살아갈 것입니다. 지금 20대 초반 내지 중반인 대학생들이라고 해서 얼마나 다르겠습니까. 그들 역시 100년 가까이 더 살 만큼 살아갈 날이 창창합니다. 인류가 이제까지 살아온 것과는 차원이 다를 만큼 오래 사는 것입니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과거에는 없었던 새로운 현상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어떤 직업을 갖고 무슨 일을 하며 즐겁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어쩌면 이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일거리는 중차대한 관심사입니다. 과거 평균수명이 70세였을 때는 은퇴하고 10년 정도 살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평균수명이 80세인 지금은 은퇴하고도 20년 이상을 살아야 합니다. 하물며 60세에 퇴직한다 해도 60년을 더 살아야 한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수명이 연장된다고 해서 퇴직연령이 100살이 될 수는 없는 일일 테니까요.
만일 40대 또는 50대에 직장을 그만둔다면 죽을 때까지 70~80년을 더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40~50대가 되어서도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만큼 더 오래 일을 해야 함을 암시하고 있지 않을까요. 60살이 되어서도 60년을 더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60년 동안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 미리 궁리하고 준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60살 이후의 직업에 대해서도 설계를 하고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일은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죽을 때까지 먹고사는 생계문제를 해결해주는 유력한 수단입니다. 동시에 일은 자신의 정체성을 세상에 알리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상징적 표상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하는 것처럼 커다란 행복도 없을 것입니다.
과거 20세기 산업사회에서는 사람의 노동력을 일종의 자원으로 간주했습니다. 토지나 자본처럼 생산하는 데 반드시 투입해야 하는 필수적인 자원으로 여겼습니다. 특히 대량생산체제인 산업사회에서는 훈련된 산업인력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양성된 대규모의 노동력은 산업사회를 지탱하는 든든한 버팀목의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세상이 아닙니다. 앞으로는 더더욱 그럴 것입니다. 과거는 현재를 있게 한 고마운 존재임이 틀림없긴 하지만, 그와 동시에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굴레가 되기도 합니다. 특히 일자리와 일거리를 둘러싼 작금의 혼란은 우리로 하여금 과거와 현재를 다시 돌아보게 만듭니다. 그리고 미래를 위해 지금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미래사회는 일자리(직장)보다는 일거리(직업) 위주로 무게중심이 이동할 것입니다. '어디에서 일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무슨 일을 하느냐'가 점점 더 중요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지금 20대 이상 젊은이들은 부모세대가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패턴의 일이 대세를 형성하는 세상을 살아갈 것입니다. 이는 그들의 부모세대가 한창 일했을 때와는 판이한 차원의 일을 만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게다가 그런 환경의 변화 때문에 적어도 일과 관련한 조언에서는 부모의 이야기가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태어나서 한 번도 체험한 적이 없는 일의 세계에 대해 부모세대가 유익한 조언을 하기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청년들의 일자리 선택에 부모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합니다. 과거 부모세대가 경험했던 일자리의 문화가 은연중에 자녀세대에게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날이 갈수록 자녀들은 일의 세계에서 혼란스러운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누구나 소위 '좋은 직장'을 들어가고 싶어 하지만 그런 일자리는 점점 하늘의 별 따기가 되어 갑니다. 게다가 우리 사회 특유의 획일적인 사고방식이 '좋은 직장'에 대한 젊은이들의 집착을 충동질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일자리를 둘러싼 청년층의 '잡 미스매칭'이 좀처럼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실정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은 나무가 아닌 숲을 보려는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일자리가 아닌 일거리 중심으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단기적으로는 직장에 기반을 둔 생활을 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직업 중심의 삶을 구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젊었을 때 이곳저곳 직장을 전전하다가 정작 50살 이후엔 거의 떠돌이나 다름없는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유엔미래보고서 2045』는 '오늘날 미국의 직장인들은 평생 11개의 일자리를 거친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국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의 현실이 될 가능성이 짙습니다. 직장에만 매달리는 일의 패러다임을 가지고 살면 미래가 매우 불안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직장을 다니든 다니지 않든, 우리 모두가 반드시 새겨 담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미래의 일의 세계에서는 '1인 기업가' 또는 '프리랜서'가 주류를 형성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남이 나를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고용'하는 형태로 고용패턴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지혜롭게 대비하지 않는다면 매우 당혹스러운 미래와 만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렇다면 젊은이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저는 투 트랙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단기에는 직장에 무게중심을 두되 중장기로 갈수록 서서히 직업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전략입니다. 그래야 평생을 두고 일의 세계에서 연착륙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먼저 직장에서의 생활이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직장에 들어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직장에서 무엇을 배우고 익히느냐가 중요합니다. 다양한 직장에서의 체험을 통해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의 성격과 특성을 파악하고 규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직장은 먹고사는 문제와 함께 많은 커리어를 쌓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직장생활을 어영부영하는 사람은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직장은 향후에 독립적인 직업을 갖기 전에 필요한 모든 덕목을 습득하기에 최고의 훈련장입니다. 그러기에 직장생활을 통해 자신의 베스트를 발휘하여 기량을 연마해야 합니다. 이렇다 할 만한 역량을 키우지 못한 채 직장 몇 군데 전전하다 좋은 시절 다 보내버리면 큰일 납니다. 마흔 살이 넘어 황량한 벌판에 내동댕이쳐지는 신세를 피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프로 직업인으로서의 소양은 사실상 직장생활에서 터득해야 합니다. 프로는 하루아침에 탄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